이용호 Deloitte Singapore 이사, 허경화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 대표
메디파나뉴스, 2024.05.08.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아세안 지역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제약기업에게도 아세안은 다른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각 국가별로 단일화되어 있지 않은 규제 등으로 인해 후순위로 여겨졌던 시장이었다. 실제로 아세안 시장은 1조4백5십억 달러 규모의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400억 달러 내외를 차지하여 우리나라 제약시장 규모와 유사한 약 4%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이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미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 아세안 시장은 꾸준한 인구와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 탄탄한 젊은 인구층과 인구∙경제성장률
아세안 국가의 인구는 약 6억5천만 명으로, 그 중 35세 이하의 젊은 인구층이 약 58%(3억8천만 명)를 차지하고 있다. 출산율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는 2.0명으로 나타나고 고령화로 인해 전체 인구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경제성장 측면에서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이 2~3% 수준으로 둔화되었지만, 아세안 시장은 5%를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 등 국제 정치적 영향으로, 과거 중국에 편중된 해외 생산거점이 아세안 국가로 이동하며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는 노령화,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보건분야 지출증가와 더불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국가 주도 의료보험 도입 및 확대 정책 추진으로 향후에도 보건의료 분야의 꾸준한 성장이 예상된다.
■ 제한적인 현지 의약품 생산 인프라
아세안 지역은 의약품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춘 국가가 한정적이다. 특히, 자체 생산 여력이 있는 국가의 경우에도 생산이 가능한 의약품 종류는 보유기술 등의 요인으로 인해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아세안 시장 내 인지도가 있는 인도네시아 국영 제약사인 Biofarma의 경우, 인도네시아의 기술 자국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제약 기술을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IVI)와 같은 국제기관이나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가져와 백신 및 다른 의약품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 시장 내 뚜렷한 기술주도 제약사가 부재한다는 이유로 아세안 시장 수출이 무조건 유망한 것은 아니다. 해당 시장은 가격민감도가 높은 시장으로 일반 제네릭 의약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각 정부는 현지 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지원 및 우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공공보건시설에 공급되는 의약품 입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트남 및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공공입찰 평가 시 현지 생산 여부를 별도항목으로 평가하고 있어, 유사한 제품일 경우 현지에서 생산된 의약품이 입찰평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한다. 특히 이는 일반 제네릭 의약품 분야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 Localisation과 차별화된 제품전략: 기술기반 개량의약품(TBM)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우리기업의 아세안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 분야를 신중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기술기반 개량의약품(Technology Based Medicine, 이하 TBM)이다. TBM은 기존의 1세대 제형 기술을 넘어선 차세대 제형 기술을 적용한 의약품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연구개발 기간과 적은 개발 비용으로 혁신적인 신약과 유사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다. 이로 인해 일반 제네릭 의약품과는 차별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장점을 통해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 특히 최근 인구 증가 및 구매력 있는 중산층의 가파른 성장으로 인해 유망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세안 시장에서의 선도적인 입지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세안 시장에서는 특히 암 및 만성질환(당뇨병, 심혈관질환 및 호르몬 관련 등)의 경우 약물전달시스템을 개선한 의약품이 안전성과 이용 편의성에 따라 환자 및 의사들에게 선호되고 있어, 기회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 파트너십을 통한 진출
점진적으로 도입되고 있으나, 싱가포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에서는 아직 HTA(Health Technology Assessment)에 대한 성숙도가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의약품의 가치에 기반한 가격 책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TBM에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더불어, Deloitte가 올해 초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의 경우 신규개발 및 개량된 신약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새로운 치료방법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효과적인 밸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TBM에 대한 인지도 제고를 위한 채널을 확보하는 등 시장 여건을 먼저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인식 제고를 위한 활동을 하기보다는 여러 관련 기관과 기업이 파트너십을 통해 협력하는 것이 사회 및 정부의 인식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가 높다. 더불어, 아세안 시장 진출시 현지 생산여부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으므로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아세안 시장 진출을 위해 민관협력은 필요충분조건
TBM을 통한 성공적인 아세안 시장 진출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세안 시장 진출 과정에서 직면한 임상, 인허가 규제, 생산 인프라 등 관련 애로사항의 해소를 위해 아세안 국가의 정부 및 공공기관, 기업들과의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진 TBM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제약기업이 현지의 공공기관 및 제약기업에 TBM 개발 경험, 해당 기술 및 노하우를 공유하고, 이에 대해 현지의 정부 및 공공기관, 제약기업들은 우리 기업들에게 TBM과 관련한 공동연구·공동개발 지원, 현지 임상시험 지원, 인허가 규제 완화, 생산 인프라 구축 지원 등을 제공한다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당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 Global Funding Organisations과 NGOs
마지막으로, 아세안 시장의 큰 손은 국제기관임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싱가포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가 개발도상국에 속하므로, 여러 방면에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보건 분야는 중요한 영역이다. 실례로, 현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전염병, 암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 등 질병관리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글로벌 기관과 NGO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글로벌 기관 및 주요 NGO들의 자금 운영 현황과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며, 국제기구 납품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요건(WHO PQ(Pre-Qualification) 인증 등)을 획득하는 전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 간 공통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에코시스템 구축에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제약사와 MedTech 기업 간 협력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파트너십을 통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한 시장형성과 진출을 고려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 마무리 하면서..
이미 우리 제약기업은 TBM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자의 기술과 특화된 장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TBM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까지는 주로 내수시장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이제는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이 필수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특히 아세안 시장은 경제 규모와 성장성 등을 고려할 때 매우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이를 중점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각 국가별로 아세안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세안 각 국가의 정부와 산업계와 함께 적극적인 소통 채널을 확보하고 글로벌 민관협업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TBM을 통한 아세안 시장에서의 성공은 향후 혁신신약 등을 통한 글로벌 사업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